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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원청이 사고에 책임져야 한다”

ㆍ긴급좌담, 19살 청년노동자 죽음의 원인과 재발 방지대책

하인리히의 법칙.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이다. 5월 28일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열아홉 살 청년이 사망했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공인노무사)는 그 죽음이 있기까지 수많은 안 좋은 신호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년에 산업재해로 2000명이 사망한다. 사망만 2000명이라면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작업현장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는 수만명에 달할 것이다.” 숫자의 이면에는 ‘경영상의 판단’이라는 말로 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시켜온 한국 사회의 구조가 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고 이야기하는데, 희한하게 민주주의가 기업의 담벼락 안으로 들어가면 ‘기업의 경영권’에 휘둘려 보이지 않게 된다. 노동자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인권이 침해돼도 그것이 ‘기업의 경영상의 판단’이라면 용인되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업재해에 대해 기업에 정확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19살 청년노동자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살인을 방치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억울한 죽음에 대한 원인을 따지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원청인 서울메트로에서 하청 노동자에게 위험한 안전관리를 맡겼다는 책임을 물어야 하고, 이윤을 정점으로 노동시장을 계층화하는 것을 방치한 책임을 정부에 물어야 한다. 법·제도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2일 정의당 이정미 의원,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 상임집행위원,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공인노무사)를 만나 열아홉 청년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은 무엇이며, 재발 방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사건에 대해 ‘전태일의 시대에서 나아지지 못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사건 직전에는 메탄올 중독, 수은 중독과 같은 산재사고도 있었다.
박혜영 “휴대폰 제조업체 하청노동자가 메탄올에 중독돼 실명된 사건이 났을 때, 노동부에서는 전국에 있는 메탄올 사업장을 일시에 점검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1988년에 온도계 제조업체에 근무하다 15세의 나이로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 수은 중독 사건이 있었다. 그때 노동부가 낸 자료도 똑같았다. 전국에 있는 수은사업장을 일시점검하겠다는 것이었다. 28년이 지나도 같다. 메탄올 중독사고의 근본 원인은 파견노동 구조에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은 없다.”

이정미 “1989년에 노동운동할 때 노조를 조직하는 운동을 했다. 그때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에 밥을 빨리 먹어야 했다. 기본권이 없었다. 당시 노조를 만들며 내세웠던 요구 중 하나가 식사시간에 젓가락을 달라는 것이었다. 빨리 먹으라고 숟가락만 줬기 때문이다. 이번에 사망한 청년노동자의 가방 안에서 컵라면과 숟가락이 나왔다고 했을 때 그때 생각이 났다. 일터에서 휴게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따로 없으니 급하게 밥 한 숟갈 먹고 일하러 간다는 건데, 30년이 지나도 그 상황 그대로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만 네 번째다. 비슷한 산재가 반복된다.
“체념이 있다. 한국 사회가 산업화를 빠르게 겪으면서 누구라도 희생당할 수 있다는 사회적 체념이다. 기업이 위험을 방치하는 행위에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문제를 제기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각자 살아남아야겠다는 생존경쟁에만 내몰려 있었다.”

“누군가 ‘압축성장은 했지만 압축성숙은 못했다’고 말하더라. 압축성장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공장 짓다가, 다리 세우다가 노동현장에서 죽었다.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성숙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은 아무것도 다지지 못한 채 성장에만 몰두했다. 작년 8월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에도 재발방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고 구의역 사고가 터졌다. 어제 인천도시철도에서 2호선 개통을 앞두고 추돌사고가 났다. 시험운전 중에 난 것이다. 사고 원인을 파악하러 현장에 갔다. 가서 보니 심각했다. 집전판이라고 전류가 흐르는 라인을 옆에 설치해 놨더라. 보통 지하철은 집전판이 위에 있다. 옆에 있으면 노동자들이 보수작업할 때 조금만 부주의해도 고압전류에 즉사할 위험이 있었다. 왜 이렇게 만들어 놓았냐고 하니 집전판을 위에 설치하면 굴을 높게 뚫어야 한다고 하더라. 옆에 놓으면 위를 낮게 뚫어도 되니까 터널 공사비가 절약된다는 것이었다. 사회의 생각이나 기준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와 있는지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구의역 사고에 대한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과거와 다른 반응이다.
김혜진
“그동안 많은 시민들이 노동자의 안전과 시민의 안전을 분리해서 생각했는데, 그 둘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가 요즘 점점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이윤논리 앞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 같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꽂혔다. 그동안 산재를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것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 개인 책임이 아니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시민들의 공분이 일어난 배경에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있다. 소득 양극화가 위험의 양극화로, 죽음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항상 위험한 일에 내몰리고 그 위험은 방치됐다. 이제는 죽음까지 사회가 방치하니 경제적인 불평등으로 쌓여 왔던 공분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강력한 집단민원이다.”


박혜영 “혼란스럽다. 산재 사망 문제만 5년째 매일 봐 왔다. 가장 안타까웠던 게 1년에 2000명씩 사망하는데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이 안 되는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변했다. 세월호 참사 전에는 산재 사망을 자신과는 먼 이야기로 생각했다. 그러나 참사 이후 ‘이것이 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구의역에 교복 입은 학생들도 많이 찾아와 추모를 했다. 자신들도 그런 일을 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전에는 구체성이 없는 사건들의 나열이었다면 이게 표출이 되면서 어떤 흐름이 생기는 것 같다.”

위험·유해업무가 하청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위험의 외주화’는 몇 년 전부터 문제가 제기돼 왔다.
“2000년대 중반까지의 일이다. 민주노조에서 위험업무 외주화를 성과라고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조합원들이 위험업무를 안 하게 된다는 맥락에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깨달았다. 이게 굉장히 심각한 문제구나. 2000년대 중반에 사내하청 노조가 생기고 문제제기가 시작되니까 그때부터 눈에 보였다. 우리가 위험을 떠넘긴 게 다른 노동자에게 떠넘긴 거였구나 하고. 그 이후부터는 단협 조항이 바뀌었다. 위험업무 외주화가 아니라 위험업무는 외주화하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그러자 이후부터 유해업무·위험업무라는 표현을 안 쓰더라. 대신에 비핵심업무·핵심업무라는 표현을 썼다. 이런 논리가 무서운 거다. 위험업무를 외주화한다는 게 더 이상 통용되지 않으니까 비핵심업무를 외주화한다는 식으로 가는 거다. 핵심·비핵심 개념은 굉장히 자의적이다. 비핵심업무라고 하는 것일수록 위험하고 유해한 업무일 경우가 많다. 외주화의 논리가 결국은 말 만들어내기이고 본질을 가리는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는 경영의 논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량해고 사태와 맞물리면서 하도급이 엄청나게 확장됐다. 그 과정에서 그걸 제어하거나 사회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아예 없었다. 며칠 전 유엔 ‘기업과 인권’ 워킹그룹에서 한국을 방문했다. 메탄올 중독사고에 대해서 원청인 삼성과 엘지는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3차 하청노동자들이고 자신들은 1차까지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국제기준이 그렇다면서 말이다. 이번에 방문한 ‘기업과 인권’ 워킹그룹은 이를 대기업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게 1차든 2차든 3차든 상관없이 원청이 공급망 전체를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위험의 외주화가 심각한 것은 절차를 복잡하게 하기 때문이다. 위험을 경감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절차 간소화다. 이번에 스크린도어 수리하는 노동자는 관제실에 직접 연락할 수 없었다. 외주화가 되면 다단계가 된다. 절차가 복잡해지면 반드시 어디선가 사고가 벌어진다. 또 노동자가 업무에서 자기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야 위험이 경감된다. 작업을 중단할지 계속할지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하청·재하청 구조에서는 작업자가 누릴 수 있는 권한은 작다.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외주화를 강화하는 중요한 구조적 요인은 공공부문에서 시행하는 총액인건비제다. 총액인건비제로 인건비를 묶어두면 그게 지자체가 됐든 공기업이 됐든 새로운 일을 진행할 때 어쩔 수 없이 외주화 형식으로 일을 추진하게 된다. 외주화가 이루어지면 구조조정당한 인력이 외주업체로 흡수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외주화를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강제해 왔기 때문이다. 외주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메피아’라고 불리는 몇몇 관료들을 처리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비용절감을 목표로 하는 외주화 결과 공공부문 재해율이 민간부문 재해율보다 높아졌다. 정부가 총액인건비제라는 이름으로 외주화를 재촉하고 싼 인건비로 노동자를 쓰게 강제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바꿔야 할까.
“현대제철에서 용광로 가동을 멈춘 적이 있다. 용광로에서 5명이 사망했는데, 근로감독관이 들어갔지만 해결이 안 됐다. 노조와 시민사회에서 대표이사를 고발하고, 기자회견하고, 노동지청을 찾아가는 등 계속 압박을 했다. 골머리를 앓던 노동부가 용광로를 멈추게 하더라. 그런데 용광로는 멈추면 재가열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사업에 어마어마한 차질을 준다. 그러자 대주주가 헬기 타고 부랴부랴 왔다. 전부 다 개편하라고 명령했다. 그때서야 조금 바뀌었다. 경영에 타격을 주면 그때서야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생긴다. 하청·재하청 구조가 혼재돼 있는 많은 작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는 통제가 안 된다. 한국 사회에는 안전이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경영에 타격을 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노동건강연대에서 기업살인법을 주장하는 이유다.”

“원청이 사고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차피 책임져야 한다면 직접고용하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 들게 해야 한다. 기업살인법은 19대 때부터 정의당이 줄기차게 이야기한 법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목받지 못했다. 진보정당이니 저런 법안을 만들었나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많은 분들이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제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20대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 보려고 한다. 제2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은 국회에서 법률을 통해서 사업주들을 제약하고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원청 책임, 법인 책임, 최고책임자의 책임, 그리고 연관된 공무원들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원칙을 확실히 해야 한다. 처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업의 위험에 대해 기업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와 그와 연관된 시민사회가 안전에 대해 바꾸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중교통은 시민들의 생명과 바로 직결된 문제다. 공공부문부터 시민사회안전위원회 같은 것을 구성하고 거기에서 외주화 문제, 1인 승무원 문제 등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글·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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