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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가습기살균제를 방향제로 착각해도 괜찮아?

‘솔잎향의 피톤치드 성분에 의한 상쾌한 기분과 산림욕 효과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한때 대형마트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상품에 표기된 광고 문구다. 은은한 솔잎향이라니 과연 어떤 제품일까. 방향제나 탈취제 혹은 산소발생기 등을 떠올렸다면 완전히 틀렸다. 다음 문구까지 본다면 감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곰팡이, 물때, 세균 제거의 강력한 3중 효과를 발휘합니다’. SK케미컬이 제조하고 애경에서 판매한 ‘홈클리닉 가습기메이트’다. 2002년 10월부터 2011년 8월 31일까지 시중에 팔린 이 제품은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로 한 번 더 ‘은은한 솔잎향’을 강조한다. ‘가습기 물 교체 시 한 번만 넣어주시면 은은한 솔잎향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쾌적한 실내환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애경이 이마트에 PB상품으로 공급한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도 ‘천연성분의 삼림욕 효과’라는 문구가 상품에 선명하게 찍혀 있다. 지금은 모두 팔리지 않는 제품들이다. 사람이 죽을 것을 알면서 판 기업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제품 회수로 소임을 다한 것일까.

 

9월 27일 오전 서울의 한 마트 직원이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화학물질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과 메칠이소티아졸리논 혼합물(CMIT/MIT)이 검출된 치약 브랜드의 홍보대를 매장에서 철수시키고 있다./연합뉴스

 

“전형적 부실조사, 즉각 재조사해야”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보면 “그렇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정위의 가습기 살균제 표시광고 심의는 잘못된 근거에 의해 내려진 전형적 부실조사”라며 “공정위는 지금이라도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즉각 재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간경향>에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4월부터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인 애경, SK케미칼, 이마트를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벌였으나 8월 19일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심의절차를 종료했다. 대외적으로는 심의 결과를 8월 26일에 공표했다. 환경부가 2012년 유독물질로 규정한 CMIT·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 성분을 표기하지 않고 ‘천연솔잎향’ 등의 성분을 강조한 혐의였다. 공정위는 가습기 살균제의 인체 위해성 여부가 확인된 바 없고, 현재 이에 대한 환경부의 추가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환경부 역시 공정위의 판단 근거가 틀렸다고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가 가습기살균제 관련 국내 대기업 조사에 착수한 때는 검찰의 옥시레킷벤키저 수사가 본격화된 무렵이었다. 공정위 심사관들은 “애경 등이 CMIT·MIT가 주성분인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면서 라벨에 주성분명 및 주성분이 독성물질임을 표시하지 않은 점은 표시광고법 제3조 1항 제2호(기만적인 표시·광고)에 해당한다고 의견을 제출했다. 흔히 알려진 것은 여기까지다. 공정위 심사관들은 해당 제품이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품공법) 상 안전관리 대상이 아님에도 ‘품공법에 의한 품질표시’ 등을 표기하고, ‘천연솔잎향의 삼림욕 효과’ 등의 문구로 인체에 유익한 것처럼 기재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즉 세 가지 점에서 소비자들을 속였다고 본 것이다. 독성물질 성분을 은폐하고, 안전관리 제품인 것처럼 속였으며, 건강제품으로 오인할 여지를 줬다. 앞서 공정위는 2012년 당시 유해성이 확인된 PHGM·PGH(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 등의 표기 위반 혐의로 옥시레킷벤키저에 과징금 5100만원을 부과했다. 법정 최고 과징금이다.

 

공정위 조사에서는 심사관이 ‘검사’, 상임위가 ‘판사’ 역할을 한다. 애경, SK케미칼, 이마트에도 변론할 기회가 주어진다. 해당 제조사의 변호인들은 “해당 제품들은 CMIT·MIT 성분을 0.015% 희석해서 사용했다”며 “성분 자체보다는 성분으로 인한 위해성이 확실하게 입증돼야 기만적 허위광고라고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도 CMIT·MIT 성분이 든 제품을 허가한 사례가 있다. 독성물질을 포함했느냐 여부보다 실제로 독성물질의 농도, 사용되는 방식 등을 통해 위험한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디안 등 치약 11개와 물티슈, 구강청정제 등의 제품에도 CMIT·MIT가 포함됐다는 사실이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밝혀졌으나 같은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위 상임위는 “희석된 상태의 CMIT·MIT 성분의 인체 위해성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변호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근거는 환경부에서 가져왔다. 김성하 공정위 상임위원은 브리핑에서 “표시광고법상 기만적인 표시광고는 소비자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 가능성 등 중요한 사실·내용을 은폐·누락한 행위를 뜻하지만, 현재 환경부가 인체 위해성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상황임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환경부가 위해성을 입증하면 공정위가 재조사를 벌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환경부는 위해성은 이미 입증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2012년 1% 농도로 희석한 CMIT·MIT는 인체에 유해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뿐만 아니라 판정위원회에서 CMIT·MIT 제품 사용자 5명에게 발병한 폐질환이 이들 제품과 관련 있다고 인정했다. 환경부는 “CMIT·MIT로 인한 폐 이외 장기 피해 규명과 구제방안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해성은 이미 입증했고, 더 나아가 폐 외 다른 장기 질환에 미치는 위해성까지 조사하고 있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

 

솔잎추출물, 산림욕 효과를 강조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솔잎추출물, 산림욕 효과를 강조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공소시효 5일 앞두고 심의결과 발표

공정위는 ‘환경부가 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CMIT·MIT의 인체 위해성이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봤다. 그러자 도미노처럼 나머지 두 혐의에 대해서도 위해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심사관들은 “천연솔입향 삼림욕 효과 등의 표현은 흡입 시 인체에 유익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들은 실제 이 제품에 솔잎향과 솔싹추출물 성분이 들어 있으며, 피톤치드 등 해당 성분은 스트레스 해소, 쾌적감, 항균작용 등 삼림욕에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내용이 담긴 논문을 제출했다. 문제는 피톤치드의 실제 삼림욕 효과가 아니라 ‘살균제’를 ‘건강제품’처럼 묘사한 광고였다고 심의관들은 주장했다. 위원회는 이 주장에 대해서도 기업들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제품에 솔잎향 등 성분이 포함돼 있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광고적 표현이며, 인체 위해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환경부가 조사 중인 점을 감안하면 허위광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 의원실은 “환경부가 인체 위해성에 대해 조사 중이라는 결론도 틀렸지만, 그 문제를 별도로 하더라도 독성물질을 건강제품인 것처럼 표기한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를 따져 봐야 한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도 “검찰 수사과정에서 제품의 인체 위해성에 대한 객관적 입증자료 등이 확보될 경우 그에 따른 조사 재개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표시광고 위반은 8월 31일로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공정위는 심의 결과를 공소시효 만료를 5일 앞둔 8월 26일에 발표했다. 조사 재개를 하더라도 해당 기업의 형사처벌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전 의원은 “향후 공정위의 추가 조사로 과징금 등 행정적 제재조치는 할 수 있지만, 이 사건에 대해 형사적 처벌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며 “공정위는 부실한 조사로 기업에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그렇더라도 정부 기관으로서 부실조사를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이제라도 국민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행정적 처벌이라도 제대로 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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