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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기획] 생활화학제품 전수조사, 아직도 '자료 수집 중'

정부는 지난 6월 8일 ‘생활화학제품 살생물질 사용실태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대형 참사의 재발을 막고, 화학제품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시중의 모든 생활화학제품에 함유된 살생물질 사용 실태를 철저히 파악하겠다는 전수조사 대책이었다. 이후 4개월이 흘렀다. 환경부는 9월 말 태스크포스(TF)팀까지 발족했다. 하지만 정부의 생활화학제품 전수조사는 아직 이렇다 할 ‘실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생활화학제품 전수조사는 3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유통 중인 생활화학제품 15종(2만여개)을 생산한 업체로부터 제품 성분에 대한 자료를 받는다. 받은 자료와 실제 제품의 성분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검증분석’ 과정이 그 다음이다. 검증분석을 거친 제품을 국립환경과학원에 의뢰해 신체에 주는 영향을 파악하는 ‘위해성 평가’를 마지막으로 조사를 마친다.

 

환경부는 조사 착수 당시 “6월 말까지 위해우려제품에 대한 자료를 제출받고 12월까지 검증분석과 위해성 평가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일 환경부 관계자에 따르면 전수조사는 첫 번째 단계인 자료수집조차 다 끝내지 못했다. 3600여개 업체 가운데 70% 정도인 2500여개 업체로부터 자료만 받은 상태다. 나머지 업체에 대해서는 이달 말까지 자료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부 업체 주소가 바뀌어 공문이 반송되는 등의 이유로 자료를 받지 못했다. 현재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자료를 받은 제품에 대해서는 검증분석 과정을 거치고 위해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제품에 대한 위해성 평가가 끝나는 시점이 언제쯤일지는 확답하기 어렵다”며 “빠르면 올해 말부터 위해성 평가가 끝나는 제품에 대해 그 결과를 공개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조사가 더딘 까닭은 인력 부족 문제가 크다. 환경부 ‘(생활화학제품) 전수조사’ 업무를 맡고 있는 본부 담당자는 서기관 1명과 주무관 2명을 더한 3명이다. 3600여개 회사에서 만든 2만여개 제품을 조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다. TF팀 관계자는 “워낙 조사할 품목이 많아 늦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때부터 지적돼온 정부부처 간 관리 주체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논의 중’이다.

 

환경부가 생활화학제품 전수조사 자료를 받고 있는 와중에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149개 치약 제품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됐던 성분인 메틸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CMIT)·메틸이소치아졸리논(MIT)이 발견됐다. 정부는 치약에 해당 성분이 사용된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지적이 있은 뒤에야 해당 사실을 파악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치약제품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치약을 포함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샴푸, 주방세제, 면도크림 등은 환경부 전수조사 대상이 아니다. 치약은 관리 부처가 식약처다. 환경부 전수조사 대상은 ‘위해우려제품’으로 지정된 생활화학제품이다. 환경부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에 따라 국민 건강이나 환경에 위해할 우려가 있는 제품을 고시하고 안전·품질관리를 하고 있다. 세제류, 방향제류, 염색·염료류, 살생물제류 15종이다.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관리하는 일회용 기저귀, 화장지, 크레파스 등도 이번 전수조사 대상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 6월 생활화학제품 전수조사를 시작하며 내년에는 위해우려 제품으로 관리되지 않는 생활화학제품과 살생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공산품, 사업장에서 사용되는 살생물 제품 등으로 조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언제 마무리되고, 조사가 시작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환경부 관계자는 “부처 간 논의 중”이라며 “언제부터 조사를 시작할지는 확실히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당시 ‘조사 대상을 확대하고 한 부처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이정미 의원이 지난달 26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관리 주체 일원화 등 화평법 전체 개정을 검토해봤는가”라고 질의하자 조경규 환경부 장관은 “전문성이 있는 완전물질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 부서에서 관리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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