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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찰, 서울대병원서 철수.."부검영장 재신청 신중히 결정"

[경향신문] 고 백남기씨 시신에 대한 부검영장 만료일인 25일 경찰이 2차 강제집행을 시도했지만 유족 측의 반발로 결국 집행하지 못했다. 경찰은 검찰과 협의해 영장 재신청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홍완선 서울 종로경찰서장은 이날 오후 5시50분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 측 법률대리인과 면담한 후 브리핑에서 “그동안 경찰은 영장에서 제시된 제안사항 취지 등을 고려해 유족 측과 부검 관련 협의를 진행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유족 측은 끝내 영장 집행을 거부했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홍 서장은 “영장 제안사항에도 있듯 부검 결과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내용이 있음에도 투쟁본부에서 경찰의 정당한 법집행을 저지한 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향후 사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등 영장을 집행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책임은 투쟁본부 측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쟁본부 측이 격렬하게 저항하는 상황에서 날도 저물었고 야간 집행으로 인한 안전사고 등 불상사가 우려돼서 강제집행하지 않고 철수한다”고 밝혔다.

 

영장 유효기간 만료 후 재신청 여부와 관련해 홍 서장은 “검찰과도 협의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이 철수한 후 백씨의 장녀인 도라지씨는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은 물러나면서 사인 논란은 투쟁본부 책임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경찰은 마지막 책임까지 투쟁본부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 일을 겪으면서 적반하장이라는 말을 몇 번 쓰는지 모르겠는데 제발 경찰은 자신들이 살인 피의자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며 “검찰은 제발 (아버지가) 마지막 가시는 길 방해하지 말고 영장 재청구를 포기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백남기투쟁본부는 성명을 발표하고 “고인의 사인을 조작해 책임을 회피해보려 했던 박근혜 정권의 시도를 국민들이 막아주셨다”며 “백남기 농민을 지킨 것은 투쟁본부의 힘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힘”이라고 시민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어 “경찰은 고인이 돌아가시는 데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피의자로 이들에게 수사를 맡길 수 없고, 지금까지 사실상 조사를 회피한 채 부검에만 득달같이 달려들었던 검찰에게도 맡길 수 없다”며 “특검을 실시해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들을 남김없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5일 고 백남기 농민 빈소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입구에서 영장을 집행하려는 경찰과 백남기투쟁본부 소속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이날 경찰이 영장 만료일에 강제집행을 시도하자 경찰과 시민들 간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장례식장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홍 서장은 이날 오후 3시쯤 경찰 관계자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경찰은 9개 중대 1000여명의 경력을 현장에 투입했다.

 

투쟁본부 관계자와 시민 1000여명은 장례식장 입구와 영안실 앞에 진을 치고 경찰의 진입을 막았다. 시민들은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라” “최순실을 구속하라” “박근혜 하야하라” “우리가 백남기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과 취재진, 경찰들이 뒤엉키자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정의당 노회찬·윤소하·이정미 의원 등이 홍 서장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홍 서장과 투쟁본부 관계자, 야당 의원들은 장례식장 주차장에 마련된 천막에서 얘기를 나눴다.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난 홍 서장은 “오늘이 영장 만료시한이어서 유족의 입장에 변화가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대리인단에) 요청했다”며 “영장에는 협의하도록 돼 있는데 (유족이) 협의 자체에 일절 응하지 않고 부검을 반대한다는 입장만 전해와서 협의에 응해줄 것을 마지막으로 촉구했다”고 말했다. 유족 대리인단은 부검 자체를 반대하는 유족 입장에는 변함이 없고 대리인에게 협의를 위임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홍 서장이 대리인단과 만나는 과정에서 경찰 뒤쪽에 선 시민들은 “살인경찰 물러가라” “살인자를 처벌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영장 집행 시도에 대한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앞서 경찰은 지난 23일 800여명을 투입해 첫 영장 집행을 시도했으나 유족 측의 거센 반발로 집행을 중단하고 철수했다.

 

이날 서울대 학생들은 “거짓된 사망진단서를 써 직업윤리를 훼손했다”며 백씨 주치의였던 서울대 백선하 교수를 해임하라고 대학본부에 요구했다.

 

학생들은 서울대 본관 앞에서 ‘백선하 교수 해임을 바라는양심있는 서울대 학생들’ 명의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을 두 번 죽이는 부검영장은 백 교수가 ‘병사’로 기재한 사망진단서를 근거삼아 청구됐다”며 “대학 본부는 불명예스러운 행위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본인의 학문 영역에서 심각한 오류를 저지른 교수를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영득·노도현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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