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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식물 대통령에게 국정 맡겨둘 수 없다"

[한겨레21] 박원순·안철수·이재명 “박근혜 대통령 즉각 하야하라”…
문재인 “저도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3_함성 대통령은 언제나 그랬듯 자기 할 말만 했다.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으나 한 번도 국민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지 않았다.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추락하고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정치를 무시하는 행보도 여전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전혀 의논하지 않은 채 기습 개각을 발표한 뒤 야권 대선 주자들을 중심으로 ‘대통령 하야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11월2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왼쪽)이 박근혜 하야 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운데)도 같은 날 박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이에 앞서 10월26일 이재명 성남시장(오른쪽)이 박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한겨레 강창광 기자, 정용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사퇴해야 한다.”

지난 11월2일 박근혜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개각을 발표한 뒤 야권 대선 주자들을 중심으로 ‘대통령 하야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이틀 뒤인 11월4일 박근혜 대통령이 거듭 사과의 뜻을 밝힌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하야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의당은 ‘대통령 사퇴’를 당론으로 내걸었고, 더불어민주당은 ‘단계적 정권 퇴진론’ 방침을 밝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이 활활 타오르는 집에 기름을 부은 결정적 계기는 김병준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 깜짝 인선이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전혀 논의하지 않은 채 이뤄진 개각 발표는 여야 모두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정치권 여전히 무시하는 대통령

대선 주자급 인사 가운데 가장 먼저 ‘하야’를 주장한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박 시장은 개각이 발표된 지 30분 만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야 한다. 경제위기, 민생 도탄, 남북관계 위기 등을 ‘식물 대통령’에게 맡겨둘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이같은 주장이 사실상 대권 포기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튿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이 하야를 하면 60일 이내 선거를 치르도록 되어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공직자는 그런 선거에 나가려면 3개월 전에 사임하도록 되어 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긴급성명을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박 시장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한 이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다. 안 전 대표는 11월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은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뒤에 숨어서 인사권을 행사했다.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고 밝혔다. 안 전 대표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다시 한번 대통령 사퇴를 강조한 데 이어, 4일 박근혜 대통령이 두 번째 사과를 한 직후에도 입장을 발표하는 등 세 번이나 하야를 촉구했다.

 

그는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최순실 개인의 일탈 문제로 전가하면서 대통령 자신은 책임이 없는 것처럼 발표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의 요구는 분명하다. 대통령이 외교를 포함한 모든 권한을 여야 합의 총리에게 이양하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 직후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특검 수용’ 등 박 대통령의 일부 발언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과는 다른 입장이다.

 

정의당 일찌감치 ‘사퇴’ 당론 채택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하야 이후의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박 대통령의 태도에 따라 추후 하야를 요구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문 전 대표는 11월4일 입장문을 발표해 “총리 지명을 당장 철회하고, 국회 추천 총리 중심으로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한 뒤 그 내각에 국정 운영 권한을 넘기고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떼는 것 외에 다른 해법은 없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선택은 없다. 대통령이 끝내 국민에게 맞선다면 중대한 결심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국민과 함께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재명 성남시장은 10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첫 번째 사과 발표 다음날부터 하야를 주장했다. 이 시장은 10월26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정도면 이미 대통령의 권위도 상실하고 지도력도 다 없어졌다. 직무 수행 능력도 의심된다. (대통령이) 하야하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서 국가권력 다 넘기는 게 맞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 이후에는 대통령 스스로 결정하는 ‘하야’ 대신 강제력이 수반된 ‘탄핵’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 시장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끝까지 하야를 거부했다. 이 사태를 수습할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 이제 정치권에서 탄핵을 준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야당 국회의원들도 순차적으로 ‘하야’ 대열에 합류했다. 현역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먼저 대통령 사퇴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이는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다. 이 의원은 10월25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하야를 요구합니다”라는 종이 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공개했다. 이 의원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숨진 백남기 농민의 빈소에서 국회로 가는 길에 “청와대 앞을 지나가다 그냥 갈 수 없었다”고 했다.

 

정의당은 일찌감치 박 대통령의 사퇴를 당론으로 내걸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11월1일 “가장 합리적인 방식은 그동안 정의당이 주장해온 바와 같이 대통령이 결단해서 자진 사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도 같은 날 “박 대통령 하야를 전제로 한 과도내각을 조속히 구성해 질서 있는 하야, 국정 위기 관리, 조기 대선 관리를 맡겨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11월3일부터 본격적으로 대통령 하야론이 부상했다. 이날 오전 더민주 현역 의원으로는 처음 이상민·홍익표·금태섭 의원 등 6명이 “박 대통령은 하루빨리 퇴진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오후에는 당내 개혁파 모임 ‘더좋은미래’와 고 김근태계인 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박 대통령의 조속한 퇴진을 요구하는 집단성명이 발표됐다. 이날만 모두 32명의 더민주 의원이 대통령 하야를 촉구한 것이다.

 

11월3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5분 자유발언에 나선 의원 11명은 모두 야당 의원이었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자유발언이 시작되자마자 일제히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송영길 더민주 의원은 자유발언에서 “(박 대통령이) 혼이 나가 정상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박 대통령은 즉각 하야하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서 국회가 국정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창원 더민주 의원은 “만약 (대통령이) 직접 소상히 진상을 밝히고 국민을 대표하는 전문가 패널의 제한 없는 질문에 답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다면 스스로 퇴진하라”는 조건부 퇴진론을 내놨다.

 

2차 대통령 대국민 담화에도 변화 없어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11월4일 대국민 담화는 정치권의 ‘하야론 불꽃’을 꺼뜨리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더 큰 국정 혼란과 공백 상태를 막기 위해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은 검찰에 맡기고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속히 회복해야 한다”며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한다”면서 중간중간 울먹이기도 했지만,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해서는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하니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자신과 무관한 최씨 개인의 일탈로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야 3당은 일제히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미흡한 사과”라고 비판했다. 추미애 더민주 대표는 담화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이 1) 별도 특검과 국정조사 2)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 철회 3)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 수용 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 차원에서 정권 퇴진 운동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도 대변인 논평을 통해 “대통령이 계속해서 최소한의 책임마저 회피하고 자리보전과 꼬리자르기에 연연한다면, 국민의당은 하야·탄핵의 길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검찰 수사를 수용한 점은 늦었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더불어민주당과 다소 결이 다른 반응을 내놨다.

 

정의당은 “죄의식조차 없는 유체이탈 화법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괴롭다.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을 부끄럽게 하지 말고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내려오길 바란다”며 하야를 다시 한번 촉구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를 놓고 정치권이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권의 압박으로 하야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거세질 경우 사태가 예상하기 힘든 쪽으로 갈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대통령 담화를 보면 흔들림 없이 국정에 매진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하게 드러난다. 현재까지는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그럼에도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인해 극단적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내려오라 하고 있다. 5% 지지율이 그걸 말해준다. 11월5일 촛불집회가 분수령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대통령이 국민에게 이끌려 내려오는 사태를 예상하는 것이다.

 

국회가 대통령 직무를 강제로 중지시키는 탄핵의 경우는 더욱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헌법상 탄핵소추의 의결 요건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다. 최소한 200명 이상의 의원이 찬성해야 대통령 탄핵소추가 의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20대 국회에선 야권 성향 의원 수(무소속 포함)는 171명으로 의결 요건에 부족하다. 새누리당 비박계에서 찬성하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비박계에서 하야나 탄핵 요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최 교수는 “야당이 막상 탄핵으로 들어가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 사퇴 전제로 조기 대선 시기 정하면

그럼에도 국민의 요구에 의해 하야와 탄핵이 이뤄진다면 그 뒤의 절차는 어떻게 될까? 헌법상 대통령의 하야 또는 탄핵이 이뤄진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정치권에선 이와 관련해 다른 대안도 나온다. 일단 대통령의 사퇴를 전제로 하고 사퇴 시기를 조절한 뒤 조기에 대통령선거를 치르자는 것이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내년 말로 예정된 대통령선거를 내년 봄으로 앞당기고 그때까지 중립적인 선거관리 내각이 선거를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국정 공백을 막고 헌법에 의해 나라가 운영되도록 보장하는 것이 그나마 빠른 수습책”이라는 의견을 냈다. 민병두 더민주 의원은 “친박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을 하나로 묶어내 국회가 추천하는 거국내각 구성을 위한 원탁회의를 가동하자”고 주장했다. 민 의원은 4개월 뒤 박 대통령이 사퇴하고 이후 2개월 안에 대선을 치르는 ‘6개월 거국내각’ 안을 제시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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